문장의 빼기와 다듬기가 잘 된 책이다. 문장이 짧아서 이따금 책을 덮어가며 속도를 맞추어야 했다. 하지만 서사가 단단하고 진솔해서, 짧은 문장이 손목 잡고 이끄는대로 따랐다. 작가인 크리스토프 바타유는 근원적인 일을 하고 싶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 소설은 1993년에 발표한 그의 첫 작품이다.

 

 소설의 첫 문장은 루이16세 얘기로 시작한다. 프랑스의 마지막 황제, 스무살에 왕위에 오른 뒤 열두해가 지난 시점(1787년)이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이 책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 황제가 1787년 프랑스 궁정에 도착했을 때 루이 16세의 치세는 우울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왕은 늙어가고 있었다. 쏟아져나오는 비판들은 신랄했다. 왕비는 그를 돌보지 않았고 대신들은 초조해했다. 왕국은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과거 앙시앙레짐(프랑스의 구체제)을 둘러싼 소용돌이를 투영한다. 당시 루이 16세가 귀족들의 과세를 위해 '삼부회'를 소집했다. 이후 삼부회는 국민의회가 되어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 마리 앙투와네트를 처형한다.

 

프랑스는 전 세계 곳곳에 대사들을 보내고 상사의 해외지점들을 설립하고 있었다. 그래서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파견대가 어디쯤 가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베트남에 '해외지점'을 설립하기 위해 누군가 항해를 해야 했다. 알려지지 않았던 나라에 가는 원정에 선장, 가톨릭 수사, 수녀가 참여했다. 배에는 대포를 쏘려던 백 명가량의 병력도 있었다. 그들은 베트남에서 맥없이 돌아가고 만다. 프랑스로부터 너무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고, 도미니크 수사와 카트린 수녀는 남는다.

 

 작가 존 버거가 <제 7의 인간>을 쓰기 위해 프랑스 농촌 풍경에 녹아들었듯이, 도미니크와 카트린도 그 곳에 젖어든다. 그들은 베트남 남쪽에서, 북쪽으로 떠난다. 콩라이는 산골마을이라 안개와 비가 잦다.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무심하다. 깊숙히 들어갈수록 둘은 밀려나고 외로워한다. 원정을 도운 사람들의 바람과 프랑스 사회의 폭풍우는 서서히 잊혀진다. 그들이 고향에서 너무나 멀리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단순하고 자유로은 삶의 기쁨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영혼은 헐벗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군더더기 없는 핵심만이 남았다.

 

 소설 말미에 둘은 사랑하게 된다. 그들이 어떻게 만나는지, 베트남의 군인이 둘의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담담하게 그리며 마무리된다. 결말을 보고나서 이 책을 선교사님께 보내는 일은 실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선교와 사랑은 결을 같이 한다. 우리는 믿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사랑을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