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원 준비 때문에 인터넷으로 독일어 과외를 받는다.
독일에서는 디지털화(Digitalisierung)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디지털화를 통해서 일상이 얼마나 달라졌나, 어떤 폐해가 있느냐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 같다.
도어락보다 열쇠를 많이 쓰고, 저작권 우려 등등으로 아직도 CD를 즐겨 듣는 독일이니까 관심 있는 주제일 법하다.

최근에는 프랑스에 사는 Paul 선생님이랑 아주 재미있게 독일어 수업을 하고 있다.
통번역대학원에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작문 때문에 주로 글쓰기를 배우는데, 내가 구글독스에 작문을 해두면 그와 함께 1시간씩 고치는 방식이다.
얼마 전에는 기사를 보다가 그가 ‘디지털 공간에 있는 너무나 많은 정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폴한테 내 폴더폰을 보여줬다.
인터넷이 분명히 편한 측면이 많지만, 보면서 폐해를 너무 많이 느껴서 불편해도 폴더폰을 쓴다고 했다.
그는 흥미롭다며 자신도 인터넷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려 노력한다고 동감했다.

그 인터넷에서 나는 수업을 받고, 그는 돈을 벌며 수업을 한다.

게임을 통해 만난 유저들이 정신적인 폐해에 대해서 얘기하는 꼴.

 

그래도 나는 인터넷에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서 안 쓰려고 한다. 너무 재밌는 공연이나 영화를 보고 돌아오면 일상에서 가라앉은 마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영화를 보면 가끔은 의구심을 갖게 된다. 꿈을 이루는 영화를 볼 때는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데, 내 삶은 이게 맞나’하고. 기분도 나쁘다. 일상에 약간의 요동을 일으킨다.

 

또 다른 이유는 인터넷으로 하는 일은 끝나고 나서 좋은 기분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스마트폰으로 매일 카톡을 하는 것은 당장은 편하지만, 할 말을 다듬어 주고 받고 문자함에 저장도 하던 옛날 방식보다 경솔해지고 가벼워진다.

 


카톡으로 가까운 사람과 연락하는 것보다, 당장 자극적이지 않더라도 산책을 하거나 앞산을 걷고 오는 게 하고 나서 훨씬 기분 좋은 일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터넷을 줄이니 나를 더 불편하게 하는 자리를 다른 것들이 대체하는 것이다.

어쩜 기분 나쁜 일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 걸지도.

 

요즘은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서 집주인에게 ‘법대로 하라. 사업이 안 돼서 어렵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일이 스마트폰보다 몇배로 신경쓰이고 기분 나쁘다. 전세 떼일 일은 안타깝게도 차단할 수 없다.

상황이 끝날 때까지는 속에서 어떻게든 맘에 맴돌게 된다.

이런 상황에 생각을 차단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명상이 좋을 것 같은데 그걸 할 에너지조차 없다.

'쓰다_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002. 언니들의 침묵  (0) 2018.02.01
001. 신과의 대화  (0) 2017.12.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