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게 신학과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학점 때문이다. 그 수업에서 닮고 싶은 분을 만났다. 신학과 교수님이셨. 그는 수업 중에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알려주셨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로마서 1 20절은 내가 잊어버렸던 것들을 살려냈다. 스무살, 기독교 필수교양수업에서 들었던 내용들이다.

 

 "자연의 것과 인간이 만든 물건은 확대해보면 확연히 다르다. 자연이 만든 곡선은 흉내낼 수 없이 훌륭하다.

작은 시계조차 시계공이 있듯이 자연도 설계자가 있을 것이다."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보이는 것만 보며 살았구나. 문장들이 나를 이끌었다. 자가처방으로 교회를 갔다. 쭈뼛대며 처음 발로 찾아간 그 날, 설교의 첫 문장은 로마서 1 20절이었다.

 

 이후로 새벽기도를 다녔다. 교회 신자들이 전도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그 순간의 설교가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았으니까. 앞으로 노력하면 ' '보신다고 했다. 나는 진리를 알고 싶어서 여러 기도를 배우고,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교회에서 만난 언니는 매주 일대일 수업을 해줬다. 언니는 생의 목표를 나와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과의 대화는 약발이 떨어져버렸다. 우주의 탄생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이제 최면에서 시간이야' 말했다.

 

 칼날 위에 같았다. 한쪽에는 영적인 세계가, 반대편에는 현실적인 삶이 있었다. 사이에서 정답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강연장에서, 유명 작가는 "문학이란 인간과 인간의 대화가 아니라 신과 인간의 대화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상 신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다만, 형태가 없는 것들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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